01. 게임인데 이기고 지는 게 없다
찜질중을 기획하면서 가장 먼저 정한 건 '무엇을 넣지 않을지'였다. 요즘 게임과 앱은 대부분 성취, 보상, 경쟁으로 사람을 붙잡는다. 찜질중은 반대로 가기로 했다.
- 랭킹과 경쟁은 없다. 누가 더 오래 있었는지 비교하지 않는다.
- 아무것도 안 해도 된다. 앉거나 누워 있으면 30초마다 '온기 ♨'가 조금씩 쌓인다. 쉬는 행동 자체가 보상이다.
- 오래 붙잡지 않는다. 온기는 하루 60까지만 쌓인다. 오래 있어야 이득인 구조를 일부러 막았다.
핵심 지표도 '얼마나 많이 했는가'가 아니라 '들어왔다가 편하게 나갔는가'로 잡았다.
요즘 쉬는 시간마다 포켓몬 GO나 구스구스덕(덕몽어스)을 한다. 둘 다 정말 재미있고 좋아하는 게임이다. 분명 잠깐 머리나 식히려고 시작하는데, 포켓몬 GO에서는 어느새 더 좋은 포켓몬을 잡고 싶어 배틀을 돌리고 있고, 구스구스덕에서는 한 판만 더 하자는 생각으로 다음 게임에 들어가 있다.
그러다 문득 깨닫는다. 나는 쉬려고 게임을 켰는데 왜 또 이렇게 열심히 하고 있지?
게임이 재미없는 건 아니다. 오히려 재미있으니까 자꾸 하게 된다. 그런데 현실에서도 하루 종일 무언가를 해내려고 애쓰다가, 쉬는 시간마저 이기고 싶고 잘하고 싶어 하는 나를 발견하면 조금 웃기기도 하고 피곤하기도 하다.
그래서 문득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게임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미션을 깨지 않아도, 누군가를 이기지 않아도, 그저 접속해서 계란 하나 까먹고 모르는 사람들 옆에 드러누워 있어도 되는 곳.
게임인데 굳이 게임을 열심히 하지 않아도 되는 공간. 그런 곳을 만들어 보고 싶었다.
02. 온라인 절 댓글에서 배운 두 가지
지난 글에서 소개한 온라인 절 댓글 중 두 개가 계속 마음에 걸렸다.
- "자리 앉는 방법을 모르겠어": 쉬러 온 사람에게 조작을 익히게 하는 것 자체가 부담이다.
- "텐 비었어. 나 다른 절로 보내졌나": 함께 있는 느낌을 기대하고 왔는데 혼자라면, 그 실망은 아무도 없는 곳보다 더 크다.
힐링 서비스에서는 작은 헤맴과 작은 외로움이 곧 이탈 이유가 된다.
03. 찜질중에 적용한 것
- 안내는 한 번만: 처음 들어오면 "바닥을 눌러 이동해요" 한 줄만 뜨고 사라진다. 긴 튜토리얼은 없다. 조이스틱, 바닥 탭, 키보드 중 편한 방법으로 움직이면 된다.
- 모두 같은 곳에서 시작: 누가 들어오든 중앙 휴게실에서 시작한다. 사람이 적을 때도 마주칠 확률이 가장 높은 곳이다.
- 지금 몇 명이 있는지 보여주기: 화면 위에 접속자 수를 항상 표시한다. 혼자여도 '지금은 나 혼자구나'를 알고 있으면 덜 당황스럽다.
- 이름 짓는 부담 없애기: 닉네임은 '따끈한양머리'처럼 찜질방에 어울리는 이름을 미리 골라 둔다. 마음에 안 들면 주사위를 눌러 바꾸면 된다.
- 혼자 있고 싶은 사람도 배려: 닉네임 없이 '혼자 둘러보기'로 들어올 수 있다.

가장 고민했던 건 '혼자 둘러보기' 기능이었다. 애초에 찜질중은 모르는 사람들과도 같은 공간에 머무를 수 있다는 생각에서 시작했으니까. 그런데 막상 내가 이용자라면 어떨까 생각해 보니, 쉬고 싶은 날에는 누군가와 대화하는 것조차 부담스러울 때가 있다. 닉네임을 정하고, 다른 사람에게 말을 걸고, 반응해야 한다는 생각만으로도 피곤해질 수 있으니까.
그래서 굳이 누군가와 어울리지 않아도 들어올 수 있도록 했다. 혼자 돌아다니다가 마음이 바뀌면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도 되고, 끝까지 혼자 쉬다가 나가도 괜찮다.
사람들과 연결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지만, 연결되는 것까지 의무로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오늘의 고찰
쉬러 온 사람에게 필요한 건 기능이 아니라 마찰이 없는 것이다. 배울 것도, 결정할 것도, 외로울 틈도 줄이는 게 '쉬러 오는 게임'의 기획이었다. 다음 글에서는 이 공간에 살 양머리 캐릭터를 어떻게 만들었는지 정리해 보려 한다.
▶ 찜질중 놀러 가기: https://jjimjiljung.yull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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